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로이즈카 미조레 (문단 편집) === 과거 === [[카사키 노조미]] & [[요시카와 유코]] & [[나카가와 나츠키]]와 같은 미나미우지 중학교 출신으로 취주악부에서 활동했다. 미나미중 취주악부는 교토부에서 나름 강호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묘하게 운이 나빠서 전국대회까진 못 가고 관서대회가 한계였는데,[* 소설 2권 71페이지에 따르면, 당시 고문 선생의 취향인지 미나미중 취주악부는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연주가 특기였고 연주회 때도 인기가 많았다.] 미조레가 재학하던 시절엔 중1: 관서대회 금상/중2: 관서대회 은상의 성적을 냈다. 노조미가 부장이 된 중3 때 부원들은 여름방학도 반납하면서[* 유포니엄 세계관에서 교토부 취주악부 중에 전국대회급 실력을 갖춘 학교는 거의 없고, 오사카부 학교에 강호가 많다. 그래서 노조미와 부원들은 전국대회를 노린다면 중학교 때가 유리하다고 보았다.] 연습에 몰두했지만[* 소설 2권 9페이지에 따르면 자유곡은 다프니스와 클로에 제2곡이며, 애니에서는 [[알렉산드르 보로딘]]의 미완성 오페라 '이고르 공' 삽입곡인 폴로베츠의 춤으로 바뀌었다. 리즈토리 감독을 맡은 [[야마다 나오코]]가 유포니엄 2기 방영 때 가진 인터뷰([[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yoani&no=85878&search_pos=-91811&s_type=search_all&s_keyword=%ED%8F%B4%EB%A1%9C%EB%B2%A0%EC%B8%A0&page=1|출처]])에 따르면 시작할 때 플루트→오보에로 연주자가 바뀌는 걸 보고 회의 때 제안해서 보로딘의 곡이 채택되었다.] 그 해에는 교토부 은상을 수상하며 관서대회에조차 진출하지 못하는데 그쳤다. 매우 저조한 성적을 거둔데 대해 미나미중 취주악부 부원들 및 고문 선생님은[* 소설 2권 10페이지에 따르면 50대 아저씨.] 큰 충격을 받았고,[* 2권 10 페이지에서 키타중 자리 쪽에서 관서대회라며 기뻐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언급된다. 1권 4~7페이지에서 쿠미코 시점 회상에 따르면 키타중은 허당 금이라 관서대회에 가진 못했다.] 타 학교에서도 이변이라고 이야기한 모양이다. 당시 키타중 취주악부 소속으로서 현장에 있었던 [[오우마에 쿠미코]]와 [[츠카모토 슈이치]]가 이를 회상하며 놀라운 일이였다고 언급했고[* 2권 71페이지.] 애니메이션에선 당시 다른 학교 취주악부 학생들이 '설마 미나미중이 관서대회도 못 갈 줄이야...'라며 수근대는 장면이 나온다. 돌아가는 길에 부원들이 침울한 표정을 짓거나 울 동안, 노조미 옆자리 창가에 앉은 미조레는 '콩쿠르란 뭘까'를 진지하게 고민했으며 콩쿠르가 너무 싫다고 혼잣말했다. 소설 2권 서장에서는[* 6~11페이지.] 이 장면에서 바로 본편으로 이어지나 2기 1화 회상에서는 노조미에게 고등학교 때는 반드시 금상을 받자고 위로받았다. 미조레는 중학교 때도 확실히 친하게 지내는 이는 소꿉친구인 노조미 뿐이었고, 그녀에게 권유를 받아 취주악부를 시작했다.[* 소설에서는 2권 119페이지에서 노조미가 쿠미코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니메이션에선 중학생 시절 처음 만난 것으로 설정이 살짝 바뀌었다.] 고등학교 때도 노조미를 따라 취주악부에 가입했지만 당시 분위기는 중학교 때와 달리 대회를 노리기에는 최악의 요건이였다. 고문이었던 리카코 선생은 실력위주가 아닌 연공서열로 1군 맴버를 뽑았고, 취주악부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의무가 있는 3학년 선배들은 꿀을 빠는 입장이라 연습도 게을리하고 후배들 관리도 대충 하느라 분위기가 나빴기 때문. 그래서 의욕있는 1학년들 사이에서 대회를 목표로 열심히 해보자는 여론이 많았고 노조미가 대표로 선배들에게 이를 정중히 부탁했는데, 당연히 먹힐리 없었고 오히려 새파란 신입들이 선배들에게 기어 오른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관련 여론에 동조한 후배들을 은따시키는 걸로 대응했다. >"작년까지 있었던 고문은 말이지, 결과 같은 건 별로 신경도 안 쓰는 사람이었어. [[마츠모토 미치에|미치에 선생님]]과 사이가 나빴는지, 미치에 선생님이 지금처럼 연습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고, 결과 같은 건 됐으니 즐겁게 연주하자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어. A멤버는 3학년을 우선시했고, 인원이 많은 파트는 2학년이어도 그냥 B로 보냈어. [[나카세코 카오리|카오리 선배]]도 [[오가사와라 하루카|오가사와라 부장]]도 그 때문에 계속 B였고." >"그랬어요?" >"그랬다니깐, 그러니까 올해 3학년이 타키 선생님한테 반발한 이유도 잘 알아. 겨우 자기 차례가 됐다고 생각했더니, 갑자기 실력주의가 돼 버렸잖아. 이제까지 선배들이 하는 짓을 참고 있더니 자기들은 보답을 받지 못하는 거냐고, [[보상심리|그런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지. 카오리 선배 같은 사람은 고등학생 된 후 올해가 처음 A로 나가는 콩쿠르인걸?(후략) >---- >타케다 아야노, 울려라! 유포니엄 <키타우지 고등학교 취주악부의 가장 뜨거운 여름>, 김완, 길찾기(2015), p.168~169에서 쿠미코에게 1학년 때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코. >"(전략)취주악부는 꽤 운동부 같은 면이 있잖아? 상하관계가 엄격하다든가. 그래서 1학년인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하자고 그래도 다들 전혀 들어 주지 않는 거야. 오히려 짜증만 내고, 2학년도 3학년이 무서우니까 따를 수밖에 없고... 뭐, 밖에서는 다들 수군거렸던 것 같지만." >"상당히 서먹서먹했겠네요." >"서먹서먹한 정도가 아니야. 애초에 향상심이 없는 것들하고 같이 한다는 게 우리한테는 무리였지. 보통, 기왕 할 거면 조금이라도 실력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법이잖아? '즐겁게 연주하는 게 제일이야' 라느니 '다 같이 맞춰나가는 게 중요하다' 라느니, 옛날 고문은 그딴 소릴 했지만 실력이 엉망진창이면 즐길 것도 못 즐기잖아. 노력하면 그만큼 나아지는데, 왜 그 인간들이 연습을 안 하는 건지 난 전혀 이해가 안 됐어. 그런 주제에 대회에는 나가고 싶다고 아주 멋대로들 지껄이고." >(중략) >"뭐, 그래도 일단은 열심히 했어. 결정적으로 갈라진 건 분명 콩쿠르 멤버가 발표됐을 때였지." >"1학년이, 전부 B였나요?" >쿠미코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그게 다였으면 아마 우리도 참았을걸. 카오리 선배라든가 오가사와라 선배라든가, 성실하게 꾸준히 연습했던 2학년이 B로 간 거야. 그게 이해가 안 돼서 3학년한테 따졌더니, 반대로 되받아치지 뭐야. '우리 서클은 원래부터 위로 올라갈 생각이 없어, 근데 연습을 하라느니 뭐라느니 맨날 시끄럽게 떠들고, 우리가 아니라 너희가 서클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걸 왜 몰라? 분위기 좀 파악해, 다들 싫어한다고' 라더라. 그 의견에 반론하는 인간들이 없는 걸 보고, 우린 취주악부를 포기했어. 이런 썩어빠진 서클에 있어 봐야 시간낭비라고 생각한 거야." >(후략) >---- >타케다 아야노, 울려라! 유포니엄 <키타우지 고등학교 취주악부의 가장 뜨거운 여름>, 김완, 길찾기(2015), p.117에서 쿠미코에게 1학년 때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조미 덕분에 1학년과 3학년 부원들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고, 결국 교토부 대회를 앞두고 이전의 관행대로 허접한 실력의 3학년 대다수가 우선적으로 A멤버에 선발되자, 그간의 불만히 폭발한 노조미를 필두로 한 의욕있는 1학년 대부분이 취주악부를 탈퇴했다.[* 1권 56페이지에서 슈이치가 쿠미코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30명이 넘던 1학년 부원 절반 이상이 그만둬서 18명만 남았다. 탈퇴한 인원은 대부분 경음악부가 좋다는 입소문을 듣고 옮겼으며(2권 118페이지), 1년 후 취주악부에 돌아온 부원은 노조미뿐이었다. 노조미는 취주악부를 탈퇴한 후에 지역 사회인들이 하는 취주악단을 알아볼 생각이었고, 그래서 같이 탈퇴한 동기들이 경음악부로 초대했을 때 사양했다.] 이 사건 당시 미조레는 키타우지 취주악부에서 한 명뿐인 오보에 연주자라는 희소성 + 파벌싸움에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고 연습에만 몰두하는 조용한 행보를 보였기에 3학년 선배들이 터치하지 않아 편하게 부활동을 하고 있었다. 노조미는 미조레가 묵묵히 연습하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같이 그만두자고 말하기 미안해서 조용히 혼자 퇴부했는데, 안타깝게도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다른 파트 선배로부터 "걔 그만뒀다는데 몰랐어?"란 알을 듣기 전까지 노조미가 탈퇴한 걸 몰랐던 미조레는 '노조미에게 버림받았다'는 절망감과 노조미를 따라가지 못한 의지박약 때문에 탈퇴하지 못하고 취주악부에 남아 있었다.[* 2기 2화 및 소설 2권 118페이지부터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2권 후반 및 4화에서 쿠미코에게 한 말에 따르면, 미조레는 자기한테 노조미는 하나뿐인 베프지만 발이 넓고 친화력있는 노조미에게 나는 (나중에 소원해져도 상관없을) 수많은 친구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왔었고 그게 두려워서 노조미에게는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실제로 노조미는 미조레를 오래된 친구지만 별로 친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취주악부를 떠난후 미조레가 피해다니기도했고.. 1년 후인 고1 때 노조미를 통해 아무도 미조레에게 같이 그만두자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쿠미코는 '1학년 중에서 혼자 A멤버[* 소설과 애니에서 1학년 때 미조레가 실력 덕분에 뽑혔는지, 아니면 오보에가 미조레 1명뿐이라 뺄 수 없어서 A멤버로 뽑혔는지는 확실히 명시되지 않았다.]였던 미조레를 질투해서'라고 의심했지만 직접 말하진 않았다. 노조미에 따르면 유코로부터 '미조레에게 같이 그만두자는 얘기를 안 했는지' 질문받았을 때, 노조미는 말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고 답했다. 그래서 노조미가 탈퇴한 뒤에 2학년 1학기까지 미조레는 노조미를 계속 피해다녔다. 다행히 노조미가 취주악부를 탈퇴한 이후로는 [[요시카와 유코]]가 미조레를 챙기며 어울리는데, [[http://maidsuki.egloos.com/4201211|미조레는 유코가 자신을 동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친구라는 감각은 딱히 없었던 듯 하다.]] 그래서 2기 4화에서 유코가 서운하게 느끼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